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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다'고해서 결과도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실제로 네로가 '손질한' 금화와 은화는 오현제 시대를 거쳐 서기 215년에 카라칼라 황제가화폐 개혁을 단행할 때까지 무려 150년 동안 계속 유통되었다. 우리 귀에 익숙한 평가절하와는 달리, 네로의 화폐 개혁은 로마 제국의 경제력 향상을 반영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타당한 개혁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건설과 재원 확보를 통한 네로 황제의 로마 재건책은 시민들에게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좋은 평판을 얻었다. 재난을 당한 사람도 당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힘을 합쳐, 로마 재건 작업은 급속히 진행되었다. 로마는 전보다 더욱 질서 정연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도있었다. 햇빛이 집 구석구석까지 들어오게 되어, 더위를 전보다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는 불평이다. 하지만 네로를 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혹평하는 역사가 타키투스도 네로의 이 로마 재건책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혜를 총동원한 유효적절한 시책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도무스 아우레아'건설은 남자의 꿈이다. 로마에는 권력자가 사재를 털어 공공건물을 지어 조국에 바치는전통이 있었다.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기보다, 로마에서는 명예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는편이 적절하다. 기증받은쪽은 기증한 사람의 이름을 그 건물에 붙이는 것으로 답례했다.네로는 자기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로가 생각한 것은 폼페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이우스극장이나 카이사르 포룸이나 아우구스투스 포룸 같은 개개의 건축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돈이 아니라 국비를 사용한다. 그러나 네로는 국비를 사용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네로는 팔라티노 언덕에서 첼리오 언덕 아래의 저지대를 지나 에스퀼리노 언덕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도심부를 뜯어고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현대의 우리는 첼리오 언덕 아래의 저지대에 우뚝 서 있는 콜로세움이 없는 로마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콜로세움은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펼쳐져 있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는 포로 로마노의 유적을 통해 바라보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건재했던 시대의 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포로 로마노는 지금처럼 기둥이나 돌덩어리가 흩어져 있는 유적이아니라, 신전이나 회당이나 각종 기념비가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는카피톨리노 언덕에 서 있는 여러개의 신전이 바라다보였고,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면 당당한카이사르 포룸이나 아우구스투스 포룸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 중의 도심인 이 일대는 공공건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그런데 역대 권력자들이 다투어 지은 것치고는 저속한 인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주랑을예로 들어보아도, 지붕을 얹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그렇게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많은 기둥은 필요없다. 하지만 기둥이 늘어서 있는 것 자체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건축물도 한곳에 모여 있으면 위용과 힘을 자아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신전을 짓는 것이 그리스인의 미의식이라면,로마인의 미의식은 많은 건물을 한곳에 모아놓음으로써 위용과 힘을 증대시키는 데 있었다.그러나 네로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네로가 생각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아르카디아'라고 부른 목가적 이상향을 로마 도심에 재현하는 것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에스퀼리노 언덕에 이르는 50만 제곱미터의 땅을 모두 사용한 '도무스 아우레아' 건설이 바로그것이었다.팔라티노 언덕 밑에https://ifonz39eio.blogspot.com/2021/05/ms-2016.html 서 '도무스 트란시토리아'(굳이 번역하자면 '통행실'이라고나 할까)가시작된다. 구조는 기둥이 늘어서 있는 주랑 형식이고, 한복판에는 높이가 4미터나 되는 네로의 황금상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오피우스 언덕까지 가는 길의 오른쪽, 오늘날 콜로세움이서 있는 저지대는 드넓은 인공호수로 변모한다. 오피우스 언덕에 서있는 '도무스 아우레아'(황금 궁전)의 본관 정면은 이 인공호수를 향해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본관 배후에 있는 에스퀼리노 언덕 전체는 동물들을 놓아기르는 자연공원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인공호수에 담을 물은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티볼리에서 끌어오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오피우스 언덕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쪽은 모두 기둥이 세 줄로 늘어서 있는 주랑으로되어 있고, 그 전체 길이는 1.5킬로미터나 되었다. 본관도 넓고 기발해서, 살롱의 천장은 회전하도록 되어 있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꽃잎이 흩뿌려지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치와 기술의 정수와 꿈을 모두 투입한 것이 '도무스 아우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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