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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재정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구체적인 방책은 사람들의 냉소를 샀을 뿐이다. 그가 내놓은 시책은 네로한테 받은 금품을 반납하라는 것이었다. 네로는 선물하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유력자나 부자에게 선물한것은 아니다. 로마 사회에서 하층계급에 속하는 가수나 배우, 기수, 검투사 등에게 선물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네로의 통치 기간은 14년이나 된다. 수년 전에 선물받은 것을 반납하라면, 곤혹스럽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다 못해 난처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해도,그 정도 금액으로는 대제국 로마의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도 의심스럽다. 갈바의재정 재건책은 화젯거리만 제공하는 것으로 끝났다. 갈바는 수도에 들어온 이후 황제 자리에 앉아 있었던 석 달을 줄곧 그런 실수만 하면서 보낸 셈이다.그래도 '전방'에 나가 있는 사령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관들은 갈바에 충성 서약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은, 68년 말 현재 갈바에게 도착한 충성 서약은 수도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라인 강 방위군 사령관 루푸스가 보낸 것뿐이었고, 머나먼 시리아나 전쟁 중인 유대에서 보낸 충성 서약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중이었기때문이다.제국 최전방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갈바의 역량을 인정해서 충성을 서약한 것은아닌 듯하다. 그들은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철저한 실력제일주의 노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신분이나 출신지와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는 관계없이 실력만 충분하면 등용될 수 있었다. 이런 경향은특히 실력을 인정받기 쉬운 군사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물론 그들도 제국의 요직에 취임할때의 자격 조건인 원로원 의석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신참자'(호모 노부스)인 그들은조상 대대로 원로원 의원을 지낸 명문 출신도 아니고, 본적지도 수도 로마가 아니다. 제국방위를 떠맡고 있다는 자부심은 남달랐지만, 신참자인 만큼 기성체제의 상징인 원로원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갈바는 그 원로원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다.'전방' 사령관들이 갈바에게 호의적이었던 또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다른 이유는 네로에게 실망한 반동으로 갈바에게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사가 몸젠이 말하는 '티베리우스 문하'는 많은 직업군인을 배출하여 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제국방위에 이바지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사적으로 로마의 가상적국 제1호인 파르티아 왕국과 항구적인 우호관계를 확립한 코르불로다.실력파 장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던 코르불로에게 네로는 아무 증거도 없이 의심만으로 자살 명령을 내렸다. 불과 1년전에 일어난 이 사건의 충격을 그들이 잊고 있을 리는 없었다.그런데 갈바는 이들의 호의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해버렸다. 라인강 상류를 지키는 고지게르마니아군 사령관 루푸스를 해임하고 본국으로 소환한 것이다. 게다가 본국으로 불러들여 다른 요직에 앉힌 것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도 아니다. 그냥 해임하고 귀국을 명령했을 뿐이다.루푸스의 후임으로는 나이가 많고 성격도 소극적인 플라쿠스를 보냈다. 플라쿠스라면 경쟁자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공석이었던 저지 게르마니아군사령관에는 비텔리우스를 임명했다. 자기와 같은 원로원 계급 출신인 비텔리우스라면 끝까지 자기를 지지해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인사는 병사들의 분노만 샀을 뿐이다. 루푸스는 병사들에게 인망이 높았다. 로마 제국의 '전방' 중에서도 라인 강 연안은 기후가 혹독하고 지형도 험한 열악한 여건에서 용맹한 게르만족을 상대하는 만큼, 다른 어느 지방보다 중요시되고 있었다. 필요에 따라군단한글뷰어 다운로드 hwp 을 이동시키는 경우는 있었지만, 7개 내지 8개 군단, 4만 2천 내지 4만 8천 명의 상비군 병력이 언제나 집중되어 있는 곳은 제국에서 이 일대뿐이었다.'게르마니아 군단' 또는 '라인 군단'이라고 불린 이 군단에 소속된 병사들은 최전방을 맡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심중에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에스파냐 속주를 통치해본 경험밖에 없는 갈바가 제국을 어떻게 통치할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 있었을게 분명하다. 갈바에 대한 반감이 라인 강 전선에서 맨 먼저 폭발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서기 69년 1월 1일, 수도 로마에서는 신임 집정관을 맞아 그해의 첫 원로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1월 1일이 업무를 시작하는 날이었지만, 역시 그날만은 의제 토의를 뒤로 미루고 신임 집정관의 취임식 같은 분위기로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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